여전히 코로나는 문화예술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이 다시 올 수 없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어떻게 코로나와 ‘잘’ 살 것인가가 관건이다.
글 이소영 작가
“이젠 코로나를 극복한다기보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해.”
친구의 말에 한참을 멍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항공, 여행, 문화계는 직격탄을 맞았으며, 미술 교육 기관을 운영하는 나도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3월에 예정된 강의는 모두 취소되었다가 5월이 돼서 다시 잡혔지만, 확진자 증가와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때문에 다시 7월 이후로 미뤄졌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취소보다 잦은 변경이다. 행사나 강연이 취소되면 차라리 다른 일을 찾을 텐데, 매일 여러 기관과 일정을 변경하고 조율하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지치기 시작하는 여름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실직자가 20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많은 지인들이 실직을 하거나 휴직을 했다. ‘2020 공연예술 통합예술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월 공연예술업계 매출액은 약 400억 원이었지만 4월 말에는 36억 원으로 눈에 띄게 축소되었다. 많은 미술관과 문화 시설이 휴관하고, 공연과 행사가 모두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계의 창작 활동도 멈췄고, 결국 많은 문화예술인의 생계도 타격을 입었다. 당분간 문화예술계는 이 무시무시한 코로나와 함께 어떻게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살아야 한다.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코로나와 함께 미술계와 미술교육계가 잘 살 수 있을까?
2020년, 세계 최고의 미술 장터 스위스 아트 바젤은 50주년을 맞이해 큰 행사를 준비했다. 매년 10만 명 정도가 방문하는 큰 미술 행사이기에 과연 아트 바젤이 코로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귀추가 주목된 가운데 바젤 측은 “보건상의 위험과 대륙 간 여행 제한 등을 고려할 때 최선의 선택은 내년 행사에 집중하는 것이다.”라면서 6월 진행 예정이던 행사 취소를 알렸다. 또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전면 대체했다. 한국 시간으로 6월 18일부터 스위스 아트 바젤 VIP온라인 오프닝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미술 애호가가 접속해 각 갤러리가 어떤 작품을 바젤에 소개하는지 관람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스위스에 가서 작품을 직접 봤을 것이다. 올 2월만 해도 이런 일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작품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보느냐 했지만 어느덧 이 프로세스가 익숙해졌다. 아트 바젤 VIP팀은 갤러리와 컬렉터가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여러 갤러리들은 아트 바젤 사이트를 통해 컬렉터나 미술 애호가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사전에 다양한 준비를 했다. 독일의 에스더 쉬퍼 갤러리는 몇몇 소그룹의 컬렉터들과 실제 아트 바젤에 가지고 나갔어야 할 작품을 베를린의 갤러리에 전시해서 핸드폰 영상통화로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축구 경기처럼 이원생중계를 진행했다. 이제 온라인에서 미술 작품을 보고 영상통화로 갤러리 오프닝을 진행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고, 핸드폰을 확대하지 않거나 영상 관련 앱을 깔지 않으면 평범한 관람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미술 작품을 본다? 1년 전만 해도 정말 바쁘거나 갈 수 없는 전시에 국한된 이야기였건만, 어제도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핸드폰으로 작품과 가격을 보니 편한 면도 참 많았다. 갤러리마다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고 작품에 대해 물어보고, 구매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던 그 많은 과정이 불필요해졌다. 클릭 한 번에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과정 면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 판매까지 연결이 잘되는 작품들도 생기니 온라인 뷰잉으로 미술 시장이 살아남는 방법에 희망이 생긴 듯하다. 전시 공백을 온라인 뷰잉으로 메꿔서 다행이지만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생긴다. 전시장에 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소리와 대화, 눈앞의 도슨트가 작품을 설명해 주는 소통은 여전히 그립다.
코로나 때문에 축소된 분야 중 교육도 큰 몫을 차지한다. 앞으로 20학번은 오래 회자될 것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졸업식을 하지 못했고, 입학식도 못 했으며, 대학에 입학하면 신나게 떠난다는 OT도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8세 어린이들은 2월 이후 3개월 이상 ‘유졸(유치원 졸업생)’로 남아 학교에 갈 책가방 짐만 여러 번 쌌다 풀었다. 많은 교육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고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다. 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간 영상통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다양한 곳에서 산만하게 각자 활동을 하자 출석 체크와 인사만 하느라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며 온라인에서 수업을 심도 있게 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자신의 유튜브에 상황을 올렸고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과목은 그나마 온라인으로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예술 과목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미술은 아이마다 다른 미술 재료를 선택하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소통하며 작품을 제작하는 수업이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미술 교육을 진행하려니 정해진 단순한 재료들의 반복밖에 되지 않았다. 창의성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교육이 색종이 따라 접기, 선생님 따라 만들기 등의 이해와 기술 위주의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어 많은 교육인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다행히 코로나 대응을 위한 정부 지원 사업 중 예술 교육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들이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모두의 예술놀이’라는 주제로, 미술이나 음악 교육인이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긴급 지원 사업 공모를 진행했다. 또한 ‘예술교육 연구활동 긴급지원’ 프로젝트도 진행되었는데, 코로나로 침체된 예술교육계의 활성화를 위해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활동 계획안을 모집해 시행하도록 하는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미술 테라피나 디지털 교육 연구, 예술 교육 전문가 인터뷰 등의 아이디어가 선정되어 예술 교육인들이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또한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등교와 원격 수업을 지원하기 위해 예술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한다고 밝혔다. 뮤지컬<프랑켄슈타인>의 ‘너의 꿈속에서’, <맘마미아>의 ‘I Have A Dream’ 등 뮤지컬 갈라 콘서트와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미술사 강의 등이 온라인 교육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코로나로 얼어붙은 미술 교육계에도 조금씩 온라인을 활용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교육을 진행하거나 다양한 지원 사업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예술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교육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소통하고 표현해야 하므로 온라인에서 각기 다른 감수성과 개성을 살린 교육을 진행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큰 주제에 따른 정보나 지식은 교류하되, 결국 세부적으로 어떻게 감성을 나누고 쌓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얼어붙은 땅에도 봄은 온다는 그 말을 여전히 믿고 싶다. 코로나로 얼어붙은 미술 시장과 미술 교육계가 통찰을 발휘한 아이디어들로 조금씩 녹고 있다. 조금 더 능동적으로 세심하게 얼어붙은 땅을 녹여가며 다시 미술인과 미술 교육인이 활동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소영 미술 에세이스트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빅피쉬아트, 신나는 미술관의 대표로 일하며 다양한 연령과 분야의 사람들에게 미술사와 현대미술에 관한 강의를 하며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출근길 명화 한 점》, 《미술에게 말을 걸다》, 《그림은 위로다》,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등이 있다.
화성시 문화매거진 <화분> 은 화성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문화예술 소식지로 화성시 내외의 다양한 문화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본 글은 <화분> 46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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