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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문화재단 월간지 화분 45호 칼럼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조회수
1091
날짜
2020-06-06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부터 진행과 해설을 맡고 있는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에 기획· 협력하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관계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난 3월에 시작될 예정이던 음악회는 코로나19의 유행과 함께 4월 일정까지 취소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 통화로 5월 일정 또한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이 더해졌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시절이 야속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꽃이 피고 잎이 돋는 봄이 왔건만, 문화예술계는 여전히 냉혹한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찾아온 뜻밖의 겨울, 공연예술계의 시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 보인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에 취소되거나 연기된 현장 예술 행사는 2,500여 건에 달하며 피해 금액은 523억 원에 육박한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의 집계를 보자면 비교적 코로나19의 영향이 덜하던 1월에는 7,500여 회에 달한 상연 횟수가 4월에는 1,800여 회 수준으로 감소했다. 380억 원 이상을 기록한 1월 매출액이 4월에는 36억 원대로 뚝 떨어졌다.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단기적인 금전적 손실로 치부하기엔 낙폭이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2월에 진행하려 한 공연은 4~5월경으로 밀렸는데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라 결국 늦은 하반기로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어요. 사실상 상반기 공연은 거의 계획하지 않는 상황이죠.” 모 공연기획자의 말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연 일정은 표류하는 중이다. 국립극장을 비롯한 국립 공연기관을 필두로 공연장의 대부분이 잠정적인 휴관 상태를 이어가며 문을 걸어 잠갔다. 부득이하게 공연을 이어간다고 해도 관객과 관객 사이에 빈자리를 두고 간격을 유지하는 거리두기 좌석제를 운영하는 만큼 기본적인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이다. 동시에 감염에 위협을 느끼는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데 부담을 느껴 객석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도 돌아가면서 무급 휴가를 쓰고 있어요. 상반기 공연이 현저히 적어 회사 수익이 없는 상황이라, 일단 하반기 공연을 진행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보자는 분위기예요.” 공연예술과 관련된 회사 대부분의 상반기 수익은 전무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사태가 진정될 것을 기대하며 하반기 공연을 준비한다. 예정돼 있는 하반기 일정에 연기된 상반기 일정을 덧대며 복잡하게 엉킬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수나 연예인 등의 공연 출연자들에게 미리 지급하는 선급금은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예정된 기간에 공연이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수입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지출은 여러모로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높아진 국가 간 장벽 또한 공연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싱가포르, 일본, 필리핀 같은 나라를 거친 투어 일정의 일환으로, 영국 공연팀의 내한 공연을 준비 중이었어요. 이럴 경우 항공권이나 물류에 대한 부담감을 각국의 공연 수입사가 나눠서 분담하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코로나19로 외국인 입국 금지령을 내린 나라에서 공연이 불가능해지면서 온전히 한국에서만 공연 개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즉, 이 공연을 성사시키려면 한국 회사에서 모든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데 수익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선택하기가 어려워졌어요.” 해외공연팀의 내한이나 국내공연팀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에이전시 업무를 하는 김지은 공연기획자의 말이다.


 외국에서 입국하는 이들의 자가격리 기간 또한 내한 공연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적잖은 부담이다.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제작사가 지불해야 하는 체류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발생하는 비용은 공연 수익에 대한 부담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3일에 재개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공연은 4월 1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배우가 생겨나면서 공연이 중단된 바 있다. 관객이 급감하고 수익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감염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해외 사정을 고려할 때 내한 공연을 쉽게 진행할 수 없고,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생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내한 공연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투어를 계획하던 국내 아티스트나 공연 단체의 청사진도 흐려진 상황이다. 세계 최고의 공연 페스티벌로 꼽히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올해 8월로 예정된 개최를 일찌감치 취소했다. 독일의 오페라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도, 프랑스의 연극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도 올해에는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국내 공연이 평균적으로 10개 이상은 됐는데 취소되는 바람에 지원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렇듯 국제적인 공연예술제가 모두 취소되면서 해당 페스티벌에 출품 계획을 세우고 있던 국내 예술가들의 상실감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원금을 받을 수 없으니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만큼 수입원이 사라진 셈이기도 해서 타격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김지은 공연기획자의 말이다.

사실 무대의 시계가 멈춘 건 한국뿐만이 아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브로드웨이도, 영국의 웨스트엔드도 현재는 문을 걸어 잠근 상태다. 공연이 멈춘 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해외 공연 기획사들도 무급 휴직의 고통 분담을 나누기도 하고, 폐업의 기로에 서 있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가운데 공연의 시계를 돌리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이 시기를 오히려 마케팅 기간으로 삼고 있어요. 온라인 플랫폼을 자신들의 디지털 콘서트홀이라 명명하며 공연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 달 동안 무료로 제공하는 거죠. 원래 베를린 필하모닉은 한화로 14만 원 정도를 지불하면 1년간 시청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정액권을 판매해 왔어요. 때문에 지금 같은 시기에 무료로 공연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유료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을 거란 기대심리가 느껴져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 이지영 과장의 설명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공연 문화가 주춤하는 상황 속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공연 수익을 창출해 내는 움직임도 대두되고 있다. 동시에 공연을 지속하게 만들어준 팬들을 위해 카메라 앞에 나타나 전 세계 방구석 1열에 아름다운 시간을 선사하는 예술가들도 등장했다. 지난 4월 26일 유튜브 생중계로 단독 리사이틀을 펼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시청한 실시간 접속자 수는 4만 6천여 명에 달했고, 조회 수는 20만 건이 넘었다. 비록 공연장에 갈 순 없지만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는 것이 오히려 선명하게 전해진다.

 “외국 관계자들은 자국에서 언제 공연을 재개할지 기약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외국에 비하면 한국은 점점 상황이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김지은 공연기획자의 말처럼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유행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국립극장을 비롯한 몇몇 공연장들이 조심스럽게 공연 재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지영 과장의 말에 따르면 금호아트홀 연세 역시 오는 6월부터 공연을 재개할 예정이다. “관객의 관람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외국에서 활동하는 국내 음악가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이들과 함께 뭔가 특별한 음악회를 기획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에요.” 공연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추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인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만날 수 없는 시대일수록 만나고 싶다는 욕구는 간절할 수밖에 없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이 어느 때보다 먼 시기인 동시에 무대에 대한 갈증 역시 어느 때보다 큰 시절이다. 결국 지금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무언가를 절실히 깨닫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랄까.




민용준 칼럼니스트
《무비스트》, 《비욘드》, 《엘르》, 《에스콰이어》에서 기자로 일하며 영화 및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칼럼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에는 영화 및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방송,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 진행과 해설도 맡고 있다




화성시 문화매거진 <화분> 은 화성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문화예술 소식지로 화성시 내외의 다양한 문화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본 글은 <화분> 45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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